HOME상월원각대조사연보
항목 | 연도 | 세수 | 내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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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출생 | 1911 | 1 | 1911년(1세)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부친 박영진(朴泳鎭)씨와 모친 삼척(三陟) 김씨 사이에서 2대독자로 탄생하셨다. 속명은 준동(準東). 법명이 상월(上月)이고, 법호가 원각(圓覺)이다. |
2 | 수학 | 1915 ~ 1923 | 5 ~ 13 | 1915년(5세) 봄, 서당에 입학하였다. 총기가 탁월하여 1923년(13세) 가을 무렵까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효(通曉)하고 한시(漢詩)에도 능숙하였다. |
3 | 출가 구도 | 1925 ~ 1930 | 15~20 | 1925년(15세) 여름, 크게 발심하여 삼태산에 들어가 천수다라니를 주력하며 100일을 기한으로 용맹정진하였다. 이 수행으로 득력(得力)을 하였고 천신의 옹위(擁衛)를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다. 1926년(16세) 봄, 모친께 하직을 고한 뒤, 불법 구도에 나서 국내 명산대찰의 성지를 역방하였다. 소백산 태백산 금강산 구월산 묘향산 등 여러 명산의 대찰을 1930년까지 5년 동안 순례하며 영험을 축적하고, 삼장교해(三藏敎海)에 두루 접하였다. |
4 | 중국성지순례 | 1930 ~ 1936 | 20~26 | 1930년(20세), 더 넓은 세상과 불법에 접하고자 중국의 오대산 보타락가산 아미산 청량산 및 천태산 국청사와 화정봉 등 성지를 6년 동안 두루 편력하였다. 북경과 서장·몽고 근방까지 순례하여 안목을 넓히고 영감(靈感)이 충만하였다. |
5 | 귀국 후 만행 | 1936 ~ 1944 | 26~34 | 1936년(26세), 성지순례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부터 대중에게 적합한 교화방편과 법력으로 중생구제에 힘썼다. 강원도와 소백산을 중심으로 도량을 삼아 9년 동안 만행을 이어갔다. |
6 | 소백산 입산 | 1945 | 35 | 1945년(35세) 음력 1월 16일, 소백산 자락의 영춘면 백자리(栢子里) 여의생(如意生) 마을에 들어왔다. 이 마을에서 방 한 칸을 빌어 따르는 대중과 함께 철야로 천수다라니를 주력(呪力) 정진하였다. |
7 | 구인사 창건 | 1945 | 35 | 1945년(35세) 음력 2월, 현재의 구인사 법당지점을 잡아 정지(整地)하고 음력 3월에 상량(上樑)하여, 소법당 외에 방 8칸·주방 2칸의 요사채를 완공하였다. 이어서 음력 5월 단오에 ‘억조창생(億兆蒼生) 구제중생(救濟衆生) 구인사(救仁寺)’로 명명하니, 이 날을 구인사 창건기념일로 정하고 있다. |
8 | 3대 서원 | 1946 | 36 | 1936년(26세), 성지순례를 마치고 귀국한 이후부터 대중에게 적합한 교화방편과 법력으로 중생구제에 힘썼다. 강원도와 소백산을 중심으로 도량을 삼아 9년 동안 만행을 이어갔다. |
9 | 동란 중 교화와 도량 복구 |
1950 | 40 | 1950년(40세), 6.25 전쟁이 일어나자 공주 마곡사 인근의 암자로 옮겨서 수행하며 난민구제에도 힘을 기울였다. 불법(佛法)으로 교화하면서 고난자(苦難者)들을 찾아 신력(神力)으로 구호하니 모두 도승(道僧)으로 모시며 따랐다. 그 해 겨울, 반년 만에 돌아와 소실된 절터에 3칸 초암을 재건하고, 선정(禪定)과 주력(呪力)으로 용맹정진을 다시 시작하였다. |
10 | 대오 | 1951 | 41 | 1951년(41세) 음력 12월 28일 새벽, 천수천안관세음보살로 용맹정진 하던 중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내가 탄생했다”라고 대성(大聲)으로 외치니, 곧 대오(大悟)의 순간이었다. 이 때 산곡(山谷)이 메아리치고 대중은 정신이 막막하였다. |
11 | 제자 지도와 대중교화 |
1952 | 42 | 1952년(42세), 대오 이후 주경야선(晝耕夜禪) 수행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고, 구인사를 찾는 대중을 다양한 방편으로 교화하였다. |
12 | 적극적인 교화와 방향 |
1963 | 53 | 1963년(53세), 새불교운동의 염원으로 적극 교화를 전개하였다. 이 때, ①호국불교의 실천, ②생활과 불교신행의 일체화, ③모든 사람이 함께하는 대중불교의 구현을 교화활동의 세 가지 방향으로 삼았다. |
13 | 전법 유행 | 1965 | 55 | 1965년(55세), 1월에 경북 영주시 부석면 성화사(구 蓬來寺)에서 1주일간의 설법으로 그곳에 머물던 선도(仙道)수행자들을 교화하였다. 이들이 초기 종단의 토대를 세우는데 역할을 하였다. 이후 경북, 대구, 강원, 부산, 울산, 제주 등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대법회를 열어 포교하였다. 당시로서 이 같은 행보는 파격적 교화의 방법이었다. |
14 | 천태종 중창 선포 | 1966 | 56 | 1966년(56세) 8월 30일, 천태종 중창을 선포하고 애국불교·생활불교·대중불교의 3대지표를 발표하였다. (이로써, 1966년을 천태종 중창의 해로 삼음.) |
15 | 종정 취임 | 1967 | 57 | 1967년(57세) 1월 24일, 천태종 초대 종정에 취임하였다. |
16 | 종단 등록 | 1967 ~ 1969 | 57~ 59 | 1967년(57세) 1월 24일, ‘천태종대각불교포교원’으로 문교부에 등록하였다. 1969년(59세) 12월 18일 ‘대한불교천태종’으로 종단등록하고 종헌·종법과 종기를 제정하였다. (이로써, 1969년을 중창 천태종 공식 출발의 해로 삼음.) |
17 | 종헌·종법 공포 | 1970 | 60 | 1970년(60세) 1월 5일, 정부로부터 종단인가를 받고 종헌·종법을 공포하였다. 종헌 전문과 총강을 통해 종지로서 3대강령을 제시하였다. |
18 | 법어 및 교시문 | 1971 | 61 | 1971년(61세) 5월 1일, 친히 교화의 기본과 지침이 되는 법어를 발표하고, 10월 26일에 종단의 방향과 종지 및 종풍에 관한 교시문을 발표하였다. 「上月圓覺大祖師 法語」 : “實相은 無相이고 妙法은 無生이며 蓮華는 無染이다 無相으로 體를 삼고 無生에 安住하여 無染으로 生活하면 그것이 곧 無上菩提요 無碍解脫이며 無限生命의 自體具現이다 一心이 常淸淨하면 處處에 蓮華開니라.” |
19 | 백만독 주송 설법 | 1973 | 63 | 1973년(63세) 겨울 안거의 결제식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관음주송 백만독’을 실천할 것을 설법하였다. |
20 | 열반 | 1974 | 64 | 1974년(64세) 음력 4월 27일 밤, 대조사께서 좌우를 둘러보며 “발보리심(發菩提心) 하라”고 말씀하고 열반에 드셨다. 세수 64세이며 법랍 50세였다. |
* 본 연보는 종단 인준 표준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