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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께서는 1911년 음력 11월 28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상마읍리 봉촌마을에서 부친 박영진(朴泳鎭)씨와 모친 삼척 김씨 사이에서 2대독자로 탄생하셨습니다. 속명은 준동(準東)이고 법명은 상월(上月), 법호는 원각(圓覺)이십니다.
5세 되던 해 봄에 서당에 입학하여 총기가 탁월하였으며, 13세 가을 무렵까지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효(通曉)하였습니다.
15세 여름에 크게 발심하여 삼태산에 들어가 천수다라니를 주력하며 100일 동안 용맹정진하여 득력(得力)을 하였습니다. 이듬해 봄부터 불법 구도에 나서 5년여 간 국내 명산대찰의 성지를 순례하며 영험을 축적하고, 삼장교해(三藏敎海)에 두루 접하였습니다.
20세에는 더 넓은 세상과 불법에 접하고자 중국의 오대산 보타락가산 아미산 청량산 및 천태산 국청사와 화정봉 등 성지를 6년 동안 두루 편력하며 영감이 충만하였습니다. 귀국한 이후에는 대중에게 적합한 교화방편과 법력으로 중생구제에 힘쓰며, 강원도와 소백산을 중심으로 도량을 삼아 9년 동안 만행을 이어갔습니다.
1945년(35세) 음력 1월 16일, 소백산 자락의 영춘면 백자리(栢子里) 여의생(如意生) 마을에 들어오시어, 따르는 대중과 함께 철야로 천수다라니를 주력(呪力) 정진하였습니다. 음력 2월부터 현재의 구인사 법당지점을 잡아 정지(整地)하고 소법당 외에 방 8칸·주방 2칸의 요사채를 완공하여 ‘구인사(救仁寺)’로 명명하셨습니다. 구인사 도량 건립 후, 대조사는 정진을 계속하면서 세 가지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첫째, 큰 법을 깨달아 이 곳에서 장엄한 불사를 전개하겠다.
둘째, 반야 지혜와 무애 해탈을 증득하지 않고는 중생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
셋째, 성취한 공덕은 중생에게 회향하여 다 함께 무상보리를 얻게 하겠다.

대조사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공주 마곡사 인근의 암자로 옮겨서 수행하며 난민구제에 힘쓰시다가, 그 해 겨울에 소백산으로 돌아와 소실된 절터에 3칸 초암을 재건하고 선정(禪定)과 주력(呪力)으로 용맹정진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1951년 음력 12월 28일 새벽, 천수천안관세음보살로 용맹정진 하던 중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내가 탄생했다”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대오(大悟)하시니, 이 때 산곡(山谷)이 메아리치고 대중들은 정신이 막막하였습니다. 대오 이후에는 주경야선(晝耕夜禪) 수행으로 제자들을 지도하고, 구인사를 찾는 대중을 다양한 방편으로 교화하였습니다.
1965년 1월, 경북 영주시 부석면 성화사(구 蓬來寺)에서 1주일간의 설법으로 대중들을 교화하시고 이어서 경북·대구·강원·부산·울산·제주 등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대법회를 열어 포교하였습니다.
1966년 8월 30일에는 천태종 중창을 선포하고 애국불교·생활불교·대중불교의 3대지표를 발표하시고, 이듬해 1월 24일에 천태종 초대 종정에 취임하였습니다.
1971년 5월 1일에는 친히 교화의 기본과 지침이 되는 법어를 발표하시고, 10월 26일에 종단의 방향과 종지 및 종풍에 관한 교시문을 공표하였습니다.
1973년 겨울 안거의 결제식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관음주송 백만독’을 실천할 것을 설법하셨습니다. 1974년 음력 4월 27일 밤, 대조사께서는 좌우를 둘러보며 “발보리심(發菩提心) 하라”고 말씀하고 열반에 드시니, 세수 64세이며 법랍 50세였습니다.
대도를 이루신 대조사님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참된 자아의 개현, 참된 생활의 구현 그리고 참된 사회의 실현을 위하여 애국불교의 건립, 생활불교의 실천, 대중불교의 구현이라는 새로운 불교운동을 전개하시며, 1400여년 오랜 역사 속에 이어진 ‘중생구제’라는 천태종의 오래된 사명을 다시금 중흥하신 것입니다.